이미지
홈으로 > 세인 나눔 > 사랑방

사랑방


작성일 : 21-08-22 15:42
목록
이요한전도사가 쓴 젊은이 예배 주보에 실린 칼럼
 글쓴이 : 세인교회
(조회 : 83)  


 

20171126, 주일 예배를 마치고 섬기는 교회의 학생들과 소환사의 협곡에서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였습니다. 손등을 타고 울리는 진동에 바라본 핸드폰 화면에는 익숙한 이름 어무이가 찍혀 있었습니다.

게임에 열중한 상태로 받은 전화상에선 어딘가 모르게 떨리는 음성이 전해졌습니다. 그 떨림의 이유는 외할머니의 부음을 전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서울신학대학원 석사 코스를 밟는 동안 외할머니께선 제 홈 메이트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할머니의 건강상태를 자부했습니다. 아침 일찍 식사를 준비하셔서 자고있는 제게 일어나라고 소리 지르셨던 것이나, 한 창 과제 중일 때 쓰레기를 버리라며 잔소리하시는 모습, 늦은 귀가 때면 너 땜에 내가 걱정되서 잠을 못 잔다고 역정을 내시던 그 모든 것이 할머니의 정정함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어머니께서 할머니의 안부를 물으실 때면 이렇게 답변해드리곤 했습니다.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화내시고 잔소리 하시는 거보면 아직 정정하세요. 적어도 10년은 거뜬하실 겁니다.”

 

중국의 한씨외전에 보면 자식은 효를 다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네(樹欲靜而風不止).”라는 소절이 있습니다. 외할머니의 부재를 경험하고 난 뒤에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던 까닭은 마음 한 켠의 사무치는 감정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아침밥 먹으라고 챙겨주실 때 함께 먹을 걸.

쓰레기 버리라고 할 때 바로바로 버릴 걸.

수요일에 같이 예배드리자는 말에 바쁜 척 하지 말 걸.

늦은 밤에 들어오면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 좀 하랄 때 할 걸.

 

지난 주 교회학교 여름 사역을 모두 마쳤습니다. 분명 홀가분한 기분이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제천중앙성결교회에서부터 화산동의 상가 건물로 옮길 때에도, 서부동 1003번지에 세인교회가 세워지고 오늘까지 달려오는 과정 속에서 늘 기도의 아딧줄이 되어주셨던 권사님께서 갑작스레 쓰러지셨고 얼마 후 다시 한 번 너무 아픈 이별을 경험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칼국수를 먹으러 갈 때면 제겐 꼭 1~2인분 만큼 더 주시던 그 사랑이, 볶음밥을 볶아주시면서 내가 해주는게 제일 맛있지?’라고 웃어주시던 그 사랑들이, 오랜 서울 생활 중 종종 제천에 내려올 때면 반갑게 손 잡아주시던 권사님의 따스함이 다시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다는 것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라는 악동 뮤지션의 가삿말처럼, 이별은 아무리 노력해도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이였지만, 권사님은 제겐 할머니셨기에 그 분의 부재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ZOOM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냐며 물으셨던 그 목소리가 생생하기에.

 

마찬가지로 4년 전 외할머니 앞에서 장모님의 기도 때문에 목회지에서 지금까지 버텼는데, 이제 그 기도가 끊어지네요. 어머니 보고 싶을 거예요.”라며 울먹이던 아버지의 모습이 권사님의 입관 예배를 인도할 때 겹쳐보였습니다. 아마 제 눈에 비친 아버지의 모습은 담임목사의 모습이 아닌 또 하나의 어머니를 잃은 아들 같았었나 봅니다. 벌써 일주일이란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권사님의 부재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체 하루 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까닭은 육신의 흔적 때문이 아닌 권사님께서 마음으로 남기신 그 사랑의 온기가 남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많은 이들은 이 땅에 빈 손으로 왔다 빈 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라며 허무함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인생이라고 단정짓는다면 전 동의할 수 없겠습니다.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그 과정 속에서 쥐고 있는 것을 나누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던 권사님의 삶을 고작 빈 손으로 재단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떠나갈 때에는 분명 빈 손일테지만, 권사님의 빈 손은 그 어떤 손보다 아름다운 손이라고 확신합니다. 그 손으로 베푸신 사랑을 받은 이들이 있기에 말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을 받은 한 사람으로서 그 사랑의 온기를 전하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해 보려 합니다. 그것이 권사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모습일테니 말입니다.

 

사랑하는 유영남 권사님. 맛있게 볶아주셨던 그 볶음밥이 너무 먹고 싶네요. 편안히 쉬세요. 사랑합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