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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작성일 : 21-10-2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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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낮 예배] 주어입니다
 글쓴이 : 이강덕
(조회 : 74)  

기본 정보

설교제목
: 주어입니다
분 류
: 주일 낮 예배
설교자
: 이강덕 목사
설교일
: 2021년 10월 24일
성경본문
: 히브리서 1:5-9

본문내용

 

20211024일 주일 오전 예배 (히브리서 강해 4)

 

제목: 주어입니다.

본문: 히브리서 1:5-9

 

서론)

 

오늘은 에베소서 6:12절을 읽으면서 설교를 시작하겠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편지하는 이 글에 등장하는 성도가 맞서야 하는 목록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통치자, 권세, 어둠의 세상 주관자,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이라고 정의합니다.

이 목록 중에 오늘 설교와 연관하여 주목하고자 하는 단어는 어둠의 세상 주관자입니다.

이 구절에 대하여 글로체스터 대학교의 앤드류 T. 링컨 교수가 자신의 주석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어두움은 현재 시대 혹은 이 세상을 가리킨다. 악의 인격적인 권세들은 쿰란 공동체 문서에서 말하고 있는 어두움의 영역과 관련이 있다. 이곳에서 공동체는 어두움의 천사들 및 그의 군대들과 종말의 전투를 할 것이며, 또한 거짓의 모든 자녀들은 어두움의 천사들의 지배를 받고 어두움의 길에서 행하게 할 것이다.”(앤드류 T, 링컨, “에베소서-WBC 주석,pp,812-813.)

링컨 교수는 적어도 그리스도들이 영적으로 전투해야 할 대상으로 어두움의 천사로 통칭되는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로 지목합니다.

그렇습니다.

어두움의 세상을 주관하는 자는 타락한 천사 즉 어두움의 천사입니다.

저는 지난 주일 설교를 통하여 히브리서 수신자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거쓰리 교수의 글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수신자들 즉 독자들은 실제로 천사를 숭배하던 골로새 사람들과 비슷한 그룹이나 이전에 천사들을 아주 높게 평가하던 쿰란 공동체의 영향 아래에 있었던 그룹에 속해 있었을 수도 있다.” (D. 거쓰리, “히브리서-틴데일 신약주석 15”, CLC, p,104.)

아마도 히브리서 독자들 중에는 쿰란 공동체에 거주하던 에세네파의 영향을 받은 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강력하게 주장하던 유대교적인 영성에 함몰되어 있던 자들입니다.

쿰란 공동체에 있었던 자들은 천사들을 두 부류로 인정하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하나는 어두움을 주관하는 타락한 천사들입니다.

그렇다면 반대의 천사도 그들은 인정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빛의 천사들입니다.

이렇게 천사에 대한 의미를 민감하게 붙들고 있었던 쿰란 공동체는 과연 어떤 공동체일까요?

중간기 400년 시대에 형성된 유대 종파는 네 분파로 요약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리새파, 사두개파, 열심당과 더불어 우리들에게 아주 익숙하지는 않지만 에세네파가 있습니다.

에세네파 사람들은 당시 유대교 기득권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사람들이 극히 세속화되어 있음을 경계하고 그들과 구별됨을 선언한 뒤에 쿰란 지역으로 이주하여 유대교적인 영성생활을 사수하며 살았던 소수의 분파입니다.

복음서에 기록을 자세히 살피면 예수께서는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를 향하여 독설을 마다하지 않으셨음을 증언합니다.

하지만 주께서 쿰란 공동체에서 유대교적인 영성생활에 매진하던 에세네파 사람들을 향하여 정죄하거나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 내용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상의 내용은 적어도 예수님마저도 에세네파에 대한 시각이 호의적이었다는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김판임 교수가 쿰란공동체와 초기 기독교공동체 비교 연구라는 논문에서 쿰란 공동체에 있었던 경건한 유대교 신자들과 초기 기독교신앙인들의 영적 연관성을 아주 적절하게 보고하고 있기에 교우들에게 소개합니다.

쿰란-에세네파(BC 168- AD 68) 사람들은 마지막 심판이 머지않아 행해질 것이고, 그러므로 종말심판에서 구원받기 위해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가르치며 경건한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때에 대한 준비는 성서연구이며, 이는 하나님 뜻대로 살기 위한 기초로 보는 것이다. 이들은 입회를 위한 엄격한 시험과정이 있었고, 공동체 생활을 위해 재산과 노동력, 정신력이 요구되었다. 이들의 경건생활은 노동과 공동식사, 그리고 식전에 행하는 침수예식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에세네파 사람들의 생활은 겉보기에 기독교 초기 공동체의 모습과 유사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이 두 공동체의 비교 연구는 기독교의 본질과 특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김판임, “쿰란공동체와 초기 기독교공동체 비교 연구”, 신약학회, 2005,p,131.)

바로 이 대목에서 오늘 설교 메시지의 중요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쿰란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던 에세네파 유대인들은 철저한 구약성서 중심의 삶을 추구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게 해 줍니다.

하지만 이들의 삶이 초기 기독교 공동체와 너무 흡사한 부분이 많아 예수님도 이들에 대해 아마도 호감을 갖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봅니다.

거쓰리 교수의 말대로 히브리서 독자들 중에는 이렇게 쿰란 공동체의 영향 하에 있었던 자들이 존재했다고 이해할 때, 히브리서 독자들 중에 상당수는 구약성서에서 지지하고 있는 천사 옹호 사상, 심지어는 천사 숭배주의라는 사상과 신앙에 자연스럽게 함몰되어 있는 상당수 많은 자들이 있음도 전제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것을 염두 하고 히브리서 1장을 쓴 것입니다.

 

본론)

 

이상의 서론적인 이해를 전제하면서 오늘 본문 5절을 읽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이 본문은 히브리서 저자의 독창적인 글이 아닙니다.

저자는 두 개의 구약성경을 합쳐 본문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전자는 시편 2:7절의 인용입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시인의 이 노래는 통상적으로 다윗의 가문에서 새로운 왕이 등극하게 될 때 그 왕의 머리에 왕관을 씌워주는 대관식 때 부르는 노래 시입니다.

후자는 사무엘하 7:14-16절의 인용입니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다윗은 20년 동안이나 아비나답의 집에 방치되어 있는 법궤를 예루살렘에 있는 다윗 성으로 옮기는 사역을 감당합니다.

이후 다윗은 자기는 백향목 궁에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법궤를 제대로 모실 성전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예언자 나단에게 전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이 모습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에 나단에게 현현하신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전하라는 신탁을 주십니다.

신탁의 내용인 즉은 다윗의 마음을 아름답게 보신 하나님께서 내가 거할 성전은 아들이 짓게 될 것임을 예고하신 뒤에 다윗에게는 귀한 언약을 선포하십니다.

다윗의 가문을 왕의 가문으로 이을 것이며, 그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하겠다는 복의 약속이었습니다.

이 두 구약성경을 인용한 히브리서 저자는 본문 5절을 통해 중요한 해석을 남기고 있습니다.

수사의문문의 표현으로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한 언약을 아들을 통해 성취하셨는데 천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느냐를 질문함으로써 천사들을 의도적으로 격하시키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6절을 읽습니다.

또 그가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

이 구절도 역시 구약성경 시편 97:7절의 인용입니다.

조각한 신상을 섬기며 허무한 것으로 자랑하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너희 신들아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시인은 분명히 말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본문 6절에서 천사를 시편 977절에 기록한 '너희 신들'(all your gods)로 병행 해석하도록 매치시킵니다.

천사들은 경배를 받을 대상이 아니라 맏아들을 경배할 대상이라고 못 박습니다.

이어 본문 7-9절을 소개합니다.

또 천사들에 관하여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셨으되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주께 부어 주를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도다 하였고

본문 7-9절은 역시 히브리서 저자의 독창적인 문장이 아니라 구약성경 시편 104:4절과 시편 45:6-7절의 인용문입니다.

먼저 시편 104:4절입니다.

바람을 자기 사신으로 삼으시고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

이어 시편 45:6-7절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왕은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왕에게 부어 왕의 동료보다 뛰어나게 하셨나이다

구약성경의 이 두 구절을 히브리서 저자가 인용했는데 그 뜻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해석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이 구절은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번역으로 다시 읽어 드립니다.

천사들에 대해서는 이렇게 성경에서 말했습니다. 그 심부름꾼들은 바람, 그 시종들은 타오르는 불꽃이다. 그러나 아들에 대해서는 성경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 영원토록 보좌에 앉아 계시는 분, 당신의 통치는 모든 것을 바로 잡습니다. 당신은 만물이 바른 자리에 있는 것을 기뻐하시고, 그릇된 자리에 있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하나님, 곧 당신의 하나님께서 당신의 머리에 향기로운 기름을 부으시고 당신을 왕으로 삼으셔서, 당신의 귀한 동료들보다 훨씬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을 주지시켜 드렸는데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히브리서 저자는 본문 1장부터 구약성경의 인용이라는 강수를 두면서까지 아들과 천사를 비교하며 그 권위를 분명히 구분하며 차별화하였을까요?

조재천 교수의 해석을 그 답으로 제시해 보겠습니다.

구약 성경 내에서 천사는 부분적으로 신적 속성과 능력을 지니지만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전령, 종으로서 종속적인 지위에 있다. 그런데 히브리서 독자 중에 유대교 신앙, 즉 전통적인 구약성경의 유일신관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천사 중 하나로 치부하려 했을 것이다. 또 한편 사해 공동체 문서들과 알렉산드리아 유대교 문헌들은 천사를 메시아적인 존재로 상정하거나 메시아보다 뛰어난 중보적인 존재로 그리기도 한다.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대중 사상에 휩쓸리고 있었다면 저자는 각별한 경계심을 가지고 천사가 그리스도보다 열등한 존재임을 역설하고자 했을 것이다.” (조재천, “히브리서-그리스도인을 위한 통독 시리즈”, 홍성사, p,51.)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갑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해 보입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구약성경을 매번 본문에 인용한 것은 천사숭배나 옹호론에 빠져 있는 유대교 신앙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기 위함입니다.

동시에 히브리서 독자들 중에 적지 않은 자들이 그리스도나 천사나 별로 다르지 않은 평등한 존재라고 인식하는 절대적인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이 역설은 히브리서 저자에게 있어서 대단히 심각한 갈파였을 것입니다.

주후 60년대 로마교회를 중심으로 한 이방 기독교 공동체를 좀 먹고, 병들게 하는 원인을 천사숭배주의 및 옹호론에 빠져 있는 유대적인 사상이라고 진단한 것입니다.

이것을 막기 위해 히브리서 저자는 그 흔한 인사치레도 하지 않고 곧바로 1:1절부터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있으며 그 첫 번째 비교 불가의 타깃을 천사로 잡은 것입니다.

이상의 본문 이해를 통해 1024일 주일 설교의 레마를 나누어 보십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내 신앙의 주어가 되어야지 보어나 목적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마태복음 17장에 보면 예수께서 변화산상에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내려오신 후속 기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귀신이 들려 있는 아버지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소연을 합니다.

물에도 넘어지고 불에도 넘어지는 간질 현상을 보이고 있는 아들을 데리고 산 밑에 남아 있던 당신의 제자들에게 가서 치료를 요청했는데 헛수고였다는 보고를 한 것입니다.

이 말을 들으신 주께서 제자들을 나무라시고 아들을 데려오라 하신 뒤, 그 아들에게 들어가 있는 귀신을 꾸짖자 아이가 나았다고 마태는 보고합니다.

이 광경을 시무룩하게 보고 있던 제자들이 주님께 이렇게 질문합니다.

우리는 왜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주께서 제자들의 질문을 받으시고 다음과 같이 답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7:20절입니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믿음이 없어서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답변 속 이면에 담겨 있는 의미를 찾아보겠습니다.

이 사건 바로 뒷 기사인 누가복음 10장를 보면 주께서 70명을 세워 각 동네에 21조의 전도 사역대를 파송하는 기사가 나옵니다.

해서 21조로 만들어진 35조의 사역자들이 파송 받은 지역으로 나가서 주의 복음을 증거하고 돌아와서 보고하는 내용이 누가복음 10:17-19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이 사역의 승리를 조금 전에 소개한 누가복음 9장에 등장하는 귀신들린 아들을 고치신 주님의 사역과 매치해 보면 기가 막힌 감동의 울림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9장에서 제자들이 만난 귀신들린 아이를 고칠 때, 그들에게 아무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던 이유는 그 현장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철저하게 보어였고, 목적어였기 때문입니다.

즉 다시 말해 제자들은 그 귀신들린 아이를 고칠 때 본인들이 주어가 되어 고치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실패를 통해 충격적인 패배를 경험했던 제자들이 70인 전도 사역자로 서기에 앞서 다시 옷매무시를 고치고 주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 누가복음 10:19절에 기록된 그대로 뱀과 전갈을 밟을 수 있는 능력,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이었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0:17절 후반절)

어떻게 이런 엄청난 변화가 가능했습니까?

주군이신 예수께서 제자들 사역의 주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증거가 있습니다.

주여 주의 이름이면” (10:17절 전반절)

앞에서 전술했던 구약성경 시편 97:7절의 인용처럼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신들(gods)이 아니라 한 분이신 하나님(A GOD)이신데 그 하나님이신 예수가 제자들 사역의 주어가 되었기에 그들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천사는 저와 여러분의 목적어와 보어 이상이 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천사는 경우에 따라 저와 여러분의 신앙적 성장을 중보하고 돕는 섬기는 영의 역할은 할 수 있어도 그 천사들은 우리가 숭배하거나 예배할 주어가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천사는 아들과 비교가 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

천사는 주어가 아닌 목적어나 보어의 역할을 하는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주어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결론)

 

저는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음식은 된장찌개 혹은 김치찌개 등등입니다.

아내의 친구 중에 음식 솜씨가 아주 좋은 친구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그 친구를 아내가 만났는데 아내에게 바리바리 음식 몇 가지를 싸서 보내주었습니다.

그 날 메뉴는 특제 소스를 곁들여 만든 레스토랑에서나 맛 볼 수 있는 음식이었습니다.

아내도 그 친구의 음식 솜씨는 인정하는 바라 제게 자신 있게 내놓으며 집사 친구가 남편 목사님 잘 섬기라고 준 음식이니까 맛있게 먹으라고 자랑했습니다.

성의를 생각해서 맛있게 먹어 주었습니다.

다 먹고 나서 제가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난 당신이 만들어주는 된장찌개, 김치찌개가 훨씬 더 맛있는데. 정 아무개 집사 음식하고는 비교가 안 돼!”

아내는 제 말이 먹고 살기 위한 립 서비스로 받았지만 저는 정말로 아내가 만들어주는 음식이 최고였기에 던진 말이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아내는 내가 사랑하는 주어이기 때문입니다.

누구하고도 비교불가인 사랑의 대상인 주어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세인 지체 여러분!

내가 내 삶의 주어로 모신 존재는 누구와도 비교불가입니다.

그 비교 불가의 존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천사가 아니라 천사장이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와는 비교 불가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저와 여러분의 목적어와 보어가 아닌 주어이십니다.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지극히 높은 주님의 나 지성소로 들어갑니다

세상의 신을 벗고서 주 보좌 앞에 엎드리리

내 주를 향한 사랑과 그 신뢰가 사그러져 갈 때

하늘로부터 이 곳에 장막이 덮이네

이곳을 덮으소서 이곳을 비추소서

내 안에 무너졌던 모든 소망 다 회복하리니

이곳을 지나소서 이곳을 만지소서

내 안에 죽어가는 모든 예배 다 살아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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